최초의 백내장 치료는 어떻게 이뤄졌나

눈앞이 뿌옇게 흐려져 세상이 점점 어두워질 때, 많은 이들이 ‘백내장’이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오늘 이야기할 주제는 바로 이 백내장의 치료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 놀라운 의학사의 첫 페이지들을 살펴보는 시간입니다. 인류가 시력을 회복하기 위해 얼마나 간절히 연구하고 도전했는지 그 여정을 함께 걸어볼까요?

시작은 고대 인도의 ‘발와술’, 백내장 치료의 출발점은 어디였을까요?

지금으로부터 2,800여 년 전, 기원전 800년경 인도의 외과 의사 수슈루타는 눈 속 혼탁한 수정체를 직접 제거하는 대신, 특별한 도구를 사용해 수정체를 눈 뒤로 밀어내는 독특한 방법을 고안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발와술(Couching)’이라 불리는 최초의 백내장 수술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방법은 혼탁한 수정체를 시야에서 벗어나게 하여 일시적으로나마 빛을 볼 수 있게 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시도였습니다.

하지만 발와술은 수정체가 눈 속에 그대로 남아있어 합병증 위험이 크고, 수술 후 원시 상태가 되어 시력이 완벽하게 회복되지 않는다는 한계가 명확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술은 인도에서 시작해 페르시아, 알렉산드리아 등 서양으로 전파되면서 고대 동서양 의학에서 중요한 눈 치료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처럼 오랜 인류의 역사 속에서 백내장이라는 눈 질환과 싸워온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지 않나요?

18세기 혁명적 도약, 다비엘의 ‘낭외적출술’은 왜 중요할까요?

발와술의 한계 속에서 인류는 더 나은 방법을 찾아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1700년대 중반, 프랑스의 안과의사 자크 다비엘(Jacques Daviel)은 기존의 발와술과는 차원이 다른 혁신적인 접근법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혼탁한 수정체를 낭(주머니)째로 완전히 제거하는 ‘낭외적출술(ECCE)’을 체계화하여 백내장 치료의 새로운 장을 열었죠. 단순히 수정체를 밀어내는 것을 넘어, 문제가 되는 부분을 완전히 제거함으로써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한 것입니다.

다비엘의 낭외적출술은 당시 의학계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으며, 그 후 20세기 초까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보편적인 백내장 수술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물론 그때는 지금처럼 마취나 수술 도구, 위생 상태가 충분히 발달하지 못해 감염이나 다른 합병증의 위험이 컸다는 점도 기억해야 합니다.

20세기, 현미경과 인공수정체의 등장은 백내장 치료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요?

의학 기술이 발전하는 데 있어 정교한 도구의 역할은 정말 중요합니다. 1952년, 독일 자이스(Zeiss)사에서 안과 및 이비인후과 전용 현미경을 개발하면서 백내장 수술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됩니다. 수술 현미경 덕분에 집도의들은 육안으로 볼 수 없었던 미세한 부분까지 확인하며 훨씬 더 정교하고 안전하게 환자의 눈을 다룰 수 있게 되었죠. 마치 작은 창문으로만 보던 세상이 갑자기 거대한 파노라마로 펼쳐진 것과 같았습니다.

여기에 1949년에 등장한 인공수정체 삽입술은 시력 회복에 있어 혁명과도 같았습니다. 과거에는 수정체를 완전히 제거하면 눈이 초점을 맞추지 못해 두꺼운 안경을 써야 했지만, 이제는 환자의 눈 안에 인공 렌즈를 삽입하여 자연 수정체처럼 기능하도록 만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아이디어가 제2차 세계대전 중 전투기 조종사의 눈에 박힌 플라스틱 파편이 염증을 일으키지 않는 것을 보고 착안되었다는 역사적 배경도 참 흥미롭습니다. 이 시기 백내장 치료법의 발전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간단한 표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시기주요 치료법/기술의미 및 특징
기원전 800년경발와술 (Couching)인도 수슈루타 고안, 최초의 기록된 백내장 수술. 수정체를 눈 뒤로 밀어냄.
18세기 중반낭외적출술 (ECCE)프랑스 다비엘 체계화. 수정체를 완전히 제거하여 시력 개선.
1949년인공수정체 삽입술시력을 거의 완벽하게 회복시키는 가능성 제시.
1952년수술 현미경 도입독일 자이스사 개발. 수술의 정교함과 안전성 극대화.

한국 백내장 수술의 역사는 어떻게 발전해 왔을까요?

한국에서도 백내장 수술의 역사는 깊습니다. 1960년대, 신상순 선생님이 국내 최초로 전방인공수정체 삽입술을 시도하면서 한국의 백내장 치료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그 이후 1970~80년대에 걸쳐 더욱 발전된 수술 기법과 마취법이 도입되면서 수술의 안전성과 치료 효과가 크게 향상되었죠. 당시에는 주로 50대 이상의 성숙한 백내장 환자들이 수술 대상이었고, 미성숙 상태에서는 수술을 미루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습니다.

초창기 수술 기법은 지금과는 상당히 달랐습니다. 절개 방식이나 마취 방법, 심지어 봉합 기술까지 오늘날과 비교하면 판이하게 달랐고, 수술 후 환자의 회복 기간도 매우 길었습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조심스럽고 고된 치료 과정이었지만, 이 선구자들의 끊임없는 노력 덕분에 한국은 이제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안전하고 수준 높은 백내장 치료를 제공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정말 자랑스러운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끝맺음: 눈부신 발전, 그리고 미래를 향한 희망

백내장 치료법이 처음 시작된 이래, 인류는 시력을 회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도구를 발전시켜왔습니다. 고대 인도에서 작은 도구 하나로 수정체를 밀어내던 초창기 모습부터, 프랑스에서 낭외적출술로 혁신을 이룩하고, 20세기에는 미세현미경과 인공수정체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치료 패러다임을 쏘아 올렸습니다.

그 긴 역사를 돌아보면 그저 ‘시력을 회복한다’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 눈이 주는 세상의 아름다움과 빛을 다시 만나는 소중한 순간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의 지혜와 수고가 쌓여 왔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면서 과거의 노력이 쌓여 지금의 발전이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네요. 앞으로도 의학 기술의 끊임없는 진보가 우리 눈 건강에 또 어떤 놀라운 희망을 안겨줄지 정말 기대가 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최초의 백내장 수술은 언제 시작되었나요?

기원전 800년경 인도에서요.

발와술과 낭외적출술, 어떤 차이가 있나요?

하나는 밀어내고, 다른 하나는 제거해요.

인공수정체는 언제부터 사용됐나요?

1949년부터 사용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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