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 민주항쟁, 국민이 직접 만든 대통령 직선제
1987년 6월,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뜨거운 여름을 보냈습니다. 군부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외치는 국민의 함성이 전국을 뒤덮었죠. 결국 이 함성은 우리 손으로 직접 지도자를 뽑는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어내는 역사적인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도대체 그해 6월, 이 땅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보며 함께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차가운 진실, 뜨거운 분노가 되다
1987년 벽두, 스무 살 청년 박종철 씨가 경찰 조사를 받다 사망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처음에는 단순 사고로 얼버무리려 했지만,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거짓 발표는 오히려 국민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죠. 이어 부천 경찰서에서 벌어진 성고문 사건, 그리고 시위 도중 최루탄에 맞아 스러진 연세대 학생 이한열 씨의 안타까운 희생은 억압적인 시대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이 일련의 사건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국민적 저항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마음속에 깊은 울분을 쌓아가고 있었던 것이죠.
전국을 뒤흔든 함성, 6·10 국민대회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분노는 행동으로 이어졌습니다.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주도한 6월 10일 국민대회를 시작으로 전국 대도시 거리마다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서울 시청 앞부터 시작된 시위는 부산, 대구, 광주 등 전국 곳곳으로 들불처럼 번졌습니다. 하루에도 수백 건의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고, 많게는 400~500만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열기였죠. 학생들뿐만 아니라 직장인, 주부, 심지어는 어린 자녀를 안고 나온 부모님들까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민주주의를 외쳤습니다. 그 광경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호헌조치’, 국민의 뜻을 꺾을 수 있었을까?
이런 국민들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당시 전두환 정권은 기존 헌법을 유지하겠다는 ‘호헌조치’를 발표했습니다.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는 대신 기존대로 간선제로 뽑겠다는 뜻이었죠. 이는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국민들의 바람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결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며 더욱 거세게 저항했죠. 길거리에서 경찰과 대치하며 최루탄 연기 속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수많은 시민들의 용기가 있었기에 민주주의는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결국, 국민의 손으로 쟁취한 대통령 직선제
전국의 강력한 저항에 결국 정부는 물러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6월 29일, 전두환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 씨가 ‘6·29 선언’을 발표하며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를 수용했습니다. 이는 국민의 힘으로 얻어낸 역사적인 승리였습니다. 이 선언에는 대통령 직선제뿐만 아니라 언론 자유 확대, 신체의 자유 보장 등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권위주의 정권 아래 억눌렸던 국민들이 목소리를 높여 절차적 민주주의의 기틀을 마련한 순간이었죠. 그날의 환호성은 아마 잊지 못할 겁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이 남긴 발자취
1987년 6월 민주항쟁은 한국 현대사에 있어 중요한 분기점이었습니다. 단순히 대통령 직선제를 얻어낸 것을 넘어, 국민들이 스스로 정치의 주체임을 자각하고 민주주의 발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항쟁 이후 정치 참여의 폭이 넓어졌고, 다양한 시민 사회 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졌습니다. 물론 이후에도 민주주의는 수많은 도전을 마주했지만, 87년 6월의 경험은 우리 사회에 민주주의의 튼튼한 뿌리를 내리게 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성과
1987년 6월 민주항쟁은 우리 사회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단순히 제도만 바꾼 것이 아니라, 국민의 정치적 의식을 한 단계 끌어올린 중요한 경험이었습니다. 그 성과들을 표로 간단하게 정리해볼까요?
구분 | 주요 성과 | 의미 |
---|---|---|
대통령 직선제 도입 | 국민이 직접 대통령 선택 | 정치적 기본권 확대 |
언론 및 신체의 자유 보장 | 숨통 트인 사회 분위기 | 억압 벗어난 개인의 자유 |
민주주의 발전 가속화 | 다양한 사회 운동 활성화 | 시민 참여 확대 |
이 표에서 보듯, 1987년 6월 민주항쟁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거대한 물줄기였죠.
마무리하며: 그날의 함성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30여 년이 훌쩍 지났지만, 1987년 6월의 뜨거웠던 기억은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줍니다. 박종철, 이한열 열사를 비롯한 수많은 희생과, 불의에 맞서 용기를 냈던 평범한 시민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민주주의와 대통령 직선제가 가능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때의 용기와 희생을 기억하는 것만이, 우리 손으로 만든 민주주의를 더욱 단단하게 지켜나가는 길이 아닐까요?
자주 묻는 질문
6월 민주항쟁은 왜 일어났나요?
군부 독재와 권위주의에 맞선 국민 저항이었어요.
대통령 직선제는 누가 주장했나요?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국민들이 요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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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9 선언은 무엇인가요?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한 정부 발표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