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그날, 남과 북은 무엇을 약속했을까요? 7·4 남북 공동 성명 이야기
와, 벌써 50년도 더 된 이야기네요. 1972년 7월 4일, 우리나라 역사에서 정말 중요한 발표가 있었어요. 바로 남과 북이 처음으로 함께 만든 약속인데요. 과연 어떤 내용이었길래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걸까요? 저도 이번 기회에 자세히 알아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꽁꽁 얼어붙었던 관계, 어떻게 대화가 시작되었을까요?
그때만 해도 남북 관계는 정말 차가웠잖아요. 냉전이 한창이었고, 서로 총부리를 겨누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런데 1970년대 들어서면서 세계적으로 미국과 소련, 중국 같은 강대국들 사이에 긴장을 풀려는 움직임, 그러니까 ‘데탕트’라고 부르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었어요. 이런 국제적인 흐름 속에서 우리도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당시 박정희 정부 시절이었는데, 남북적십자회담을 시작으로 조심스럽게 대화의 가능성을 타진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마침내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북한의 박성철 제2부수상이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비밀리에 만남을 가졌어요. 정말 영화 같은 이야기 아닌가요? 양측 최고 지도자의 뜻을 받들어 극비리에 진행된 이 접촉이 마침내 역사적인 합의로 이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떤 약속들을 했을까요?
가장 중요한 건 바로 통일을 위한 3가지 원칙에 합의했다는 점이에요. 이게 정말 역사적인 순간이었죠.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 당국이 머리를 맞대고 통일의 기본 방향에 동의한 것이니까요.
통일의 3대 원칙: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
첫째, 자주! 이건 외세에 의존하거나 간섭받지 않고, 우리 민족의 힘으로 통일 문제를 해결해 나가자는 거예요.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통일은 우리 민족 스스로 결정하자는 자주적인 의지를 담은 거죠.
둘째, 평화! 서로 전쟁 같은 무력에 의존하지 않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약속이었어요. 총칼이 아니라 대화와 협상으로 문제를 풀자는 건데, 당시 군사적 긴장이 높았던 상황을 생각하면 정말 획기적인 합의였죠.
셋째, 민족대단결! 남과 북이 서로 다른 사상이나 이념, 체제를 가지고 있지만, 그런 차이를 뛰어넘어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크게 단결하자는 의미예요. 이념 대립보다는 민족의 공동 이익을 먼저 생각하자는 뜻이 담겨 있었어요. 이 세 가지 원칙은 이후 남북 관계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 기본적인 틀이자 정신이 되었어요. 정말 중요한 내용이죠?
말로만 그치지 않은 구체적인 약속들
단순히 원칙 선언에만 그친 게 아니었어요. 서로에 대한 비방이나 중상을 멈추고, 예상치 못한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한 조치들을 취하기로 합의했죠. 그리고 아마 많은 분들이 이산가족 상봉을 떠올리실 텐데요,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남북적십자회담을 적극적으로 진행하기로 했어요. 또 끊어졌던 남북 사이의 상설 직통전화를 설치해서 언제든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기로 했고요. 이런 합의 사항들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실천하기 위해 ‘남북조절위원회’라는 기구를 구성하고 운영하기로 약속했답니다. 이 7·4 남북 공동 성명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남북 관계 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 계획까지 담고 있었던 거죠.
| 원칙 | 핵심 내용 |
|---|---|
| 자주 | 외세 간섭 없이 우리 민족 스스로 통일 문제 해결 |
| 평화 | 무력 사용 없이 평화적 방법으로 통일 달성 |
| 민족대단결 | 사상, 이념, 제도 차이를 초월하여 민족적 단결 도모 |
합의는 했지만… 그래서 결과는 어땠나요?
솔직히 말하면, 이 역사적인 약속들이 처음부터 순탄하게 지켜진 건 아니었어요. 기대와 달리, 남북조절위원회는 다음 해인 1973년 8월, 북한 측이 김대중 납치 사건 등을 문제 삼아 일방적으로 회의 중단을 선언하면서 오래가지 못했죠. 각자의 국내 정치적인 상황이나 합의 내용에 대한 해석 차이, 그리고 여전히 깊었던 불신 때문에 더 이상 관계를 진전시키기 어려웠던 거예요. 하지만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는 건 아니었어요. 비록 대화는 잠시 멈추고 구체적인 성과들은 미흡했을지 몰라도, 이때 합의된 통일의 3대 원칙만큼은 이후 남북 관계에 계속해서 중요한 등대 역할을 했거든요. 바로 이 7·4 남북 공동 성명이 있었기에, 수십 년간 이어져 온 불신과 대립 속에서도 분단 이후 처음으로 ‘평화 통일’이라는 공동의 목표에 남과 북이 공식적으로 동의할 수 있었던 거죠. 이게 정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흘러도 중요한 이유, 그 영향력은?
마치 굳게 닫힌 문을 처음으로 열어젖힌 것과 같다고 할까요? 7·4 남북 공동 성명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크지만, 이후 남북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어요. 1980년대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교환이나 예술공연단 교환,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그리고 2000년 역사적인 첫 남북정상회담과 6·15 남북 공동선언 같은 중요한 합의들도 결국 이 7·4 공동 성명에서 제시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원칙들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거든요. 물론 지금 남북 관계가 다시 얼어붙고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때의 약속들이 빛바래거나 의미를 잃는 건 아니라고 봐요.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7·4 남북 공동 성명의 정신, 즉 어떻게든 만나서 대화하고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그 첫 마음가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남북 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찾는 데 중요한 교훈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7·4 남북 공동 성명은 비록 모든 약속을 당장 현실로 만들지는 못했지만, 한반도 역사에서 남북이 최초로 통일의 기본 원칙에 합의하고 공식적인 대화의 문을 열었다는 점에서 정말 큰 발걸음이었어요. 여기서 합의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3대 원칙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히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향한 길을 밝혀주는 중요한 나침반이 되어주고 있죠. 언젠가 이 원칙들이 온전히 실현되어 남과 북이 진정으로 화합하고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가 찾아오는 날을 진심으로 기대해 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왜 하필 7월 4일에 발표했을까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A. 사실 특별한 역사적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남북 양측이 여러 차례 비밀 협의를 거쳐 합의문 내용을 완성하고, 이것을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발표하기로 약속한 날짜가 바로 1972년 7월 4일 오전 10시였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보통 발표 날짜를 따서 7·4 남북 공동 성명이라고 부르게 된 거랍니다.
Q. 그때 사람들은 남북 대표가 비밀리에 만나는 걸 미리 알고 있었나요?
A. 아니요, 전혀 몰랐어요!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박성철 제2부수상의 상호 방문이나 회담 자체가 완전 극비리에 진행되었거든요. 보안 유지가 철저했기 때문에, 7월 4일에 공동 성명이 갑자기 발표되었을 때 국내는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도 정말 큰 놀라움과 충격을 주었다고 해요. 그야말로 ‘깜짝 발표’였던 거죠.
Q.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3대 원칙은 지금도 유효한 건가요?
A. 네, 그럼요. 아주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 3대 원칙은 7·4 공동 성명 이후에도 남북 간의 여러 중요한 합의들, 예를 들어 남북기본합의서나 6·15 공동선언, 10·4 선언 등에서도 계속해서 기본적인 정신으로 재확인되고 있어요. 남북 관계가 좋을 때나 혹은 지금처럼 어려울 때나,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논의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핵심적인 기준으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답니다. 시대를 초월하는 원칙이라고 할 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