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히틀러는 어떻게 권력을 잡았을까요? 그 과정을 파헤쳐 봅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유독 기억에 남는 해가 있기 마련인데요. 저에게는 1933년 독일이 바로 그런 시기 중 하나입니다. 그 해 아돌프 히틀러라는 인물이 독일의 총리가 되면서, 이후 세계사의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는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했죠. 도대체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한 사람이 그토록 막강한 힘을 손에 쥐게 되었을까요? 오늘은 그 배경과 과정을 한번 자세히 들여다볼까 합니다.
정권을 향한 발걸음: 히틀러는 처음부터 계획했을까?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듯이, 히틀러의 정치 여정도 처음에는 미미했습니다. 1919년, 그는 당시 작은 정당이었던 독일 노동자당(DAP)에 가입하면서 정치 활동을 시작했어요. 이후 이 당은 나치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점차 세력을 키워나갔죠. 당시 독일 사회의 혼란과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그의 선동적인 연설과 민족주의적 메시지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 같습니다.
1932년 선거: 민심은 어디로 향했을까?
1932년은 나치당에게 중요한 해였습니다. 그해 7월에 치러진 총선에서 나치당은 무려 37%의 표를 얻으며 독일 제1당으로 떠올랐습니다. 비록 과반수는 아니었지만, 엄청난 약진이었죠. 같은 해 11월에 다시 열린 선거에서는 득표율이 33%로 조금 줄긴 했지만, 여전히 독일 내에서 가장 강력한 정당의 위치를 굳건히 지켰습니다. 이런 결과는 당시 독일 국민들이 기존 정치에 얼마나 실망했고, 새로운 변화를 얼마나 갈망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까 싶어요.
1933년 1월 30일: 운명의 그날
결국 1933년 1월 30일, 당시 독일 대통령이었던 힌덴부르크는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하게 됩니다. 사실 힌덴부르크 대통령은 히틀러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지만, 나치당의 커진 영향력과 보수 세력 및 재계의 압박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결정적인 순간이 바로 히틀러의 권력 장악(1)의 시작점이 된 셈이죠. 많은 사람들은 이 시점까지도 설마 히틀러가 완전한 독재자가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1933년 히틀러 집권 주요 사건 요약 | |
---|---|
날짜 | 사건 |
1월 30일 | 히틀러, 독일 총리로 임명됨 |
2월 27일 | 국가의회 의사당 화재 발생 |
2월 28일 | ‘민족과 국가를 보호하기 위한 대통령령’ 공포 (기본권 제한) |
3월 23일 | 전권 위임법 통과 (입법권 장악) |
독재 체제 구축: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졌나?
총리가 된 히틀러는 자신의 힘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그의 행보를 보면 정말 치밀하게 준비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요. 몇 가지 결정적인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국가의회 의사당 화재: 위기를 기회로?
1933년 2월 27일, 독일 국가의회 의사당 건물에 큰불이 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 사건의 배후는 아직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나치당은 이를 공산주의자들의 소행으로 몰아가며 정치적 반대 세력을 탄압하는 절호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이 사건 직후, ‘민족과 국가를 보호하기 위한 대통령령’이라는 긴급 조치가 발표되었고, 이를 통해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 등 바이마르 헌법이 보장하던 기본적인 시민권이 무력화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화재 사건은 히틀러의 권력 장악(2) 과정에서 반대파를 제거하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전권 위임법: 의회 민주주의의 종말
기본권 제한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걸까요? 히틀러는 한 발 더 나아갔습니다. 1933년 3월 23일, 그는 의회에서 ‘전권 위임법’이라는 법안을 통과시킵니다. 이 법은 정부(사실상 히틀러)가 의회의 동의 없이도 법률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그야말로 엄청난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이 법의 통과로 바이마르 공화국의 민주주의 시스템은 완전히 붕괴되었고, 히틀러는 합법적인 틀 안에서 독재를 할 수 있는 길을 열게 된 것이죠. 어떻게 이런 법이 통과될 수 있었는지, 당시의 정치적 압박과 사회적 분위기를 짐작하게 합니다. 이 전권 위임법 통과야말로 히틀러의 권력 장악(3)을 완성시킨 핵심적인 단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의 국가, 하나의 민족, 하나의 총통
전권 위임법 이후 나치당은 독일 내 유일한 합법 정당이 되었고, 다른 모든 정당들은 강제로 해산되거나 흡수되었습니다. 노동조합 역시 해체되었고, 언론과 문화 예술 등 사회 전반이 나치당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되었죠. 그리고 1934년 8월,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자 히틀러는 국민투표를 통해 총리직과 대통령직을 통합하여 스스로를 ‘퓌러(Führer)’, 즉 총통으로 칭하며 명실상부한 독일의 유일한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이로써 그의 독재 체제가 완전히 자리 잡게 됩니다.
돌아보며: 역사는 무엇을 말하는가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히틀러의 권력 장악(4)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합법적인 절차와 정치적 기회 활용, 그리고 위기 조작 등이 결합된 결과였습니다. 처음에는 합법적인 총리였던 인물이 어떻게 불과 1년 반 만에 완전한 독재자가 될 수 있었는지, 그 과정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합니다. 민주주의 시스템이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 그리고 위기 상황에서 대중의 심리가 어떻게 이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뼈아픈 교훈이죠.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단순히 과거의 사실을 아는 것을 넘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히틀러의 권력 장악(5) 과정은 오늘날에도 우리가 경계하고 성찰해야 할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네요.
자주 묻는 질문
Q. 히틀러가 총리가 된 게 완전 불법은 아니었다는 건가요?
네, 맞아요. 표면적으로는 합법적인 절차를 따랐습니다. 1932년 선거에서 나치당이 제1당이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했죠. 하지만 그 이후의 과정, 특히 전권 위임법 등을 통해 민주주의 시스템 자체를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그 합법성이 퇴색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Q. 국가의회 의사당 불은 정말 공산당이 저지른 건가요?
이 부분은 아직도 논란이 많습니다. 당시 현장에서 네덜란드 출신 공산주의자 한 명이 체포되긴 했지만, 그가 단독으로 저질렀는지, 아니면 나치당이 배후에서 조작했는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합니다. 확실한 것은 나치당이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최대한 이용해 반대 세력을 숙청하고 권력을 강화하는 데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Q. 히틀러가 총리가 되자마자 바로 독재자가 된 건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총리가 된 것은 1933년 1월이었고, 이후 국가의회 의사당 화재 사건을 빌미로 기본권을 제한하고(2월), 전권 위임법을 통과시켜 입법권을 장악한(3월) 뒤, 1934년 8월 힌덴부르크 대통령 사망 후 총통이 되면서 완전한 독재 권력을 확립했습니다. 즉, 약 1년 반에 걸쳐 단계적으로 독재 체제를 구축해 나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